「효를 모르는 사람들」

Author : jingoworld / Date : 2014.08.18 17:30 / Category : JIN/펜과 노트

'하늘에는 별이, 가슴에는 꿈을 1997' -신성중 2학년 최진우
중학교 시절 쓴 수기, 어린 시절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나만 그런가.

  얼마 전, 나에게 있었던 일이다. 나는 그때 내 친구 경중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거기서 경중이와 나는 한 분의 할아버지를 만나 뵙게 되었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버스에 탈 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말씀하시는 것 같았지만, 누구도 그 할아버지가 하시는 얘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하지만 본성이 착한 경중이가 할아버지께 가서 무슨 말씀이냐고 여쭈자 할아버지께서는 전혀 알아듣기가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중이가 종이를 꺼내서 할아버지에게 드리자, 할아버지께서는 종이에다가 무언가를 열심히 쓰셨다.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종이를 건네주셔서 종이를 보니 종이에는 삐뚤어진 글씨체로 '부천시 은행동'이라고 쓰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운전기사 아저씨께 부천시 은행동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기사 아저씨께서는 모른다고 대답하셨다. 그래서 경중이와 내가 다른 분들에게 부천시 은행동이 어디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어느 한 아주머니께서 부천시는 한참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할아버지를 한 번 뒤돌아 보시더니 그 할아버지께서는 집에서 쫓겨 나오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나머지 말씀을 이으셨다. 그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하신 말씀으로는 그 할아버지의 사위되는 사람이 할아버지가 귀찮다고 폭력을 쓰면서 집에서 쫓아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장인어른을 집에서 쫓아낼 수가 있단 말인가.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얘기이다. 정말 요즘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와 경중이는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 그 할아버지를 주변 파출소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거기다 할아버지께서는 거동과 의사소통이 잘 안되셔서 안 그래도 누군가가 필요하신 모양이셨다. 운전기사 아저씨께서도 그 할아버지 댁 주변에서 내려 주신다고 하셔서 우리는 힘을 얻었다. 

  경중이와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주변 파출소 가지 가려고 팻말을 보았다. 팻말을 보니 거기에는 '시흥시 파출소'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그때야, 경중이와 나는 그곳이 시흥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를 부축해 드리기는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보람으로 여기며 열심히 할아버지를 부축해 드렸다. 

  할아버지를 부축해 드리면서 파출소로 가고 있는데 도중에 그 주변 동네 세탁소 아저씨께서 우리를 부르시더니 할아버지를 어디서 모셔 왔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우리는 안양에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그 세탁소 아저씨께서는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말씀을 하신 뒤, 그 할아버지의 댁으로 안내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드디어 할아버지 댁을 찾게 되었구나'하고 내심 기뻐했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의 댁으로 들어가 보니 그 할아버지의 딸로 보이시는 한 아주머니께서 아주 기쁜 표정으로 뛰어 나오시는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부축해드리고서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 아주머니께서는 우리와 함께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드리다가 이내 할아버지의 팔을 놓으시더니 할아버지에게 집안까지 혼자서 들어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봐서는 굉장히 힘드신 모양이셨다. 그런데도 그 아주머니께서는 할아버지를 부축해 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였지만 아주머니께서도 힘드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내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우리는 그 아주머니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께서는 점심을 만드시는데 전혀 성의가 없고 밥도 찬밥을 주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분이 몹시 나빴으나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하였다. 점심을 먹으면서 아주머니께서는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 어디서 할아버지를 만나 뵙게 되었냐는 등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다. 하지만 물어보시는 것이 거의 다 건성인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쉬고 있는데 아주머니의 아들로 보이는 한 어린아이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매우 통통하여 보였다. 곧 있어 그 아주머니의 딸로 보이는 한 여자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딸은 고등학생 1학년이었는데 매우 성숙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 다 할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고 아주 무례하게 구는 것이었다. 정말 안타까웠다. 

  이렇게 어린아이까지도 예의를 모르다니 정말 동방예의지국은 벌써 물 건너 간 옛날 얘기 같았다. 조금 후에 할아버지께서 어디를 또 나가려고 하시자 그 아주머니께서 오시더니 부천에 가 보았자 아무도 없으니 갈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때야 생각했지만 버스를 타고 올 때 할아버지께서 쓰셨던 '부천시 은행동'은 집이 아니라 아무래도 다른 곳 같았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잘못 모셔다 드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할아버지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그 집을 떠나려는데 그 아주머니께서는 우리를 붙잡으시더니 우리에게 1,000원씩을 건네주시면서 차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재삼 거절하였으나 주는 것을 안 받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마지못해 돈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할아버지를 두고 떠나기가 안쓰러웠으나 어쩔 수 없이 그 집을 떠나야 했다. 우리가 그 집을 나서고서 그 집에서 점점 멀어져 그  집이 안 보일 때쯤 별안간 문을 힘차게 닫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를 크게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아까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우리가 있을 때는 할아버지에게 잘해 드리는 척을 하다가 우리가 사라지자마자 자신의 아버지를 나무라다니, 정말로 효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집에 오는 길에 아까의 그 운전기사 아저씨의 버스를 또 타게 되었다. 정말로 그 아저씨와는 인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저씨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언제 또다시 집에서 쫓겨 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번 경험에서 정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효라는 것을 잊어가고 있고, 효를 제대로 알고 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이라도 효를 충실히 행하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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